영혼 리크루터 이야기 – 에피소드 #001

사람을 죽였다. 우발적으로. 한 번도 저질러 본 적 없는 이 끔찍한 일을 내 손으로 행한 이유는 억울함 때문이다. 내가 뭘 잘못 했다고,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내가 뭘 그렇게 욕심 부리며 살았다고 이런 구렁텅이에 빠져 사리분간을 못하게 한 것이냐 말이다. 그러므로 난 정의를 행한 것이다. 세상이 나에게 적절한 빌미와 감정상태를 제공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 대상이 있어서 꼭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대상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냥 원망할 뿐이다.

그래도 복수는 했다. 무섭고 떨리고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속은 시원하다.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더럽다. 굉장히 더럽다. 그래서 칼을 찌른 내 손을 잘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눈물이 난다. 내 몸에는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저 골목 뒷편에 쓰러져 있을 그 원수를 생각하니 차디찬 이 막바지 겨울공기도 전혀 차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 손이, 내 심장이 더 차기 때문일 것이다. 영영 잃어버린 나의 세 가족들을 생각하니 분노가 차오른다. 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입에선 찬 공기를 애써 데우려는 입김만 나올 뿐이다. 흐느끼며 터져 나오는 나의 서릿발 가득한 한 숨이다.

“이원석 씨.”

쪼그려 앉아 흐느껴 울고 있다 깜짝 놀라 방어태세로 몸을 일으켜 쏘아본다.

“누, 누구세요?”

말없이 나를 한참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그 어떤 살기나 독기나 따뜻함도 없다. 무슨 말을 하려는 의도조차 없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도 없는 오묘한 모습에 내 눈을 둘 곳이 없다. 나는 어떻게 이 만남을 모면할까, 대적할까, 도망칠까 궁리하며 눈을 이리저리 돌린다.

“왜, 왜요? 왜 그러시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에 가서 눈을 감고 딱 백 까지만 세어보세요. 그럼 꿈에서 깰 겁니다.”

차분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외딴 자의 목소리가 끝나자, 그는 천천히 나를 지나 걸어 멀어져 간다.

잠깐을 생각하다 본능적으로 그의 뒷편으로 달려간다.

“저기요!”

그의 어깨를 손으로 툭 건드리는 순간 내 몸은 고꾸라져 바닥에 쳐박혔다.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다시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내 방이다. 2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창에 달린 암막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몸을 돌려 1미터 정도 떨어진 책상 위에 시계를 보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무슨 요일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온 건지 기억을 떠올려보려 해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 속에 남은 문장은 “조용한 곳”과 “백 까지 세어라” 뿐이다. 별 희한한 꿈을 꿨다 생각한다. 그 골목에서 직접 저질렀던 끔찍한 일이 벌써 소설 속 장면같이 느껴진다. 그런 일을 내 손으로 저질렀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확신만큼 그 자가 내게 제안한 행동에 대한 음성도 또렷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손을 뻗으면 바로 닿는 자그마한 옷장 문을 열고 머리를 스르르 집어넣는다. 아직 밝은 하얀 빛이 눈으로 기어들어온다. 퀘퀘한 냄새가 나는 내 옷들 속으로 머리를 숙 집어넣고 한 숨을 크게 내쉰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괜히 볼을 한 번 꼬집어 본다. 아프다. 꿈이 아니다. 다시 집중한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큰둥하면서도 심심한 목소리로 수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구십 팔, 구십 구, 백!

질끈 감았던 눈을 스르르 열어본다.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퀘퀘한 내 옷 냄새는 여전히 코로 쑤시고 들어온다. 고개를 떨구매 헛웃음을 짓자 붉은 빛이 살짝 눈으로 삐져 들어온다. 다시 몸을 빼내어 옷장 문을 닫는다. 타각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은 옷장 문이 아니다. 방 문이다. 이상하여 곧장 뒤를 돌아보면 전구색 빛을 띄는 조명이 은은하게 깔린 방이고, 3미터 앞 즈음에 책상이 있고, 그 뒤로 의자에 누군가 앉아 열중하여 문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을 건다.

“잘 잤어요?”

둘러보면 창문도 없이 조명만 있는 방에 별다른 향기도 나지 않는다. 평범한 상담실처럼 생겼다. 아직 지구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원래 말이 없어요?”

두 마디를 듣고 나니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다. 그 현장에서 차갑고 고요하게 내 귀를 때렸던 그 목소리가 분명하다. 그 땐 몰랐는데 지금 그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여인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면접인데 묵비권 행사하실 건가요?”

그제서야 눈 앞에 있던 내가 앉아야만 하는 것처럼 생긴 의자가 보인다.

“누구…신지요?”

면접관은 귀찮다는 듯 책상을 뒤적거려 리모콘을 찾아 띡 하고 누른다. 그의 뒷 편으로 스크린이 지이잉 하며 천천히 내려온다. 한참을 기다려 스크린이 다 내려올 때 쯤 면접관은 그 타이밍에 맞춰 바퀴 달린 자신의 의자를 발로 굴러 스크린 옆으로 스르륵 비켜 앉는다. 영상이 재생된다. 리드미컬한 음악과 함께 지나가는 아주 빠른 타이밍의 핵심 단어로만 이루어져 있는 프레젠테이션 영상이다.

당신 인생? – 노답 – 여기 어디? – 인력사무소 – 이제 뭐해? – 서명 – 그 다음엔? – 일 해 – Q&A

마지막 Q&A 슬라이드에서 영상은 멈춘다. 같이 나오던 발랄한 음악도 멈춘다. 방어할 틈도 없이 정보를 먹게 되어버린 나는 어리둥절하다. 조금 화가 난다.

“뭐하는 거요?”

“채용이요.”

“저는 면접 보러 온 적 없습니다.”

“백까지 셌잖아요. 내가 시킨 대로.”

“안녕히 계십시오.”

뒤로 돌아 들어온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아니라 벽에 그려진 문 그림이다.

“어차피 돌아가봐야 맨날 울고 술병 나발 불고 할 거 아니에요. 그냥 서명하세요.”

이를 위 아래로 세게 물고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나가는데 어디야?”

“나가는데 없는데요.”

주먹에 더 큰 힘이 들어간다. 몸을 뒤로 돌려 한 마디 해야겠다 싶어서 돌아서는 순간, 면접관은 어느새 내 코 바로 앞에 얼굴을 맞대고 서 있다. 깜짝 놀라 벽으로 물러선다. 면접관의 얼굴도 뒷걸음질 치는 나를 따라 어느새 벽까지 와 있다.

“뭐…요?”

“궁금해서 한 번 와봤으면 끝까지 얘기를 들어보셔야 할 것 아니에요, 이 인간아.”

잠깐 쫄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리 몸집도 크지 않은 여인이다.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의 몸을 밀치려 팔을 뻗는다. 어느새 내 팔은 뻗쳐진 채로 면접관의 몸에는 닿지도 못한 채 면접관의 손에 붙들려 있다.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면접관이 숨을 고르고는 나즈막히 말을 건넨다.

“흠흠. 자, 처음부터 다시 할게요.”

나를 놓아주더니 뚜벅뚜벅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뚫어지게 쳐다보며 질문한다.

“할 거에요, 말 거에요?”

일단 저 의자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자 쪽으로 걸어가며 대답한다.

“저, 근데, 제가 지금 정말 뭣 때문에 면접을 보는지 모르겠어서 그렇거든요.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의자에 정자세로 앉자마자 면접관이 재촉한다.

“모르는 게 약입니다. 자, 여기. 서명하세요.”

“저, 그래도,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야 문서라는 거에 서명을 하던 말던 할 거 아닙니까?”

면접관은 한숨을 푹 쉬더니 옆에 있던 인터폰에 버튼을 누른다. 삐이이이.

“어, 왜?”

“내가 이래서 위에서 정해놓고 보낸 인간은 안 받겠다고 했잖아!”

“응, 그래.”

“아이씨, 너 죽을래?”

“그건 인간들이나 죽는 거고. 끊는다. 화이팅!”

뚜우우우.

“우이씨! 으흠. 에헴. 헴.”

면접관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근엄을 차리려는 듯 자세도 고쳐 앉는다.

“살인 2회. 가족 잃음. 직장 잃음. 지명수배. 이래서 어딜 돌아가겠다는 거죠?”

그렇다. 나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그래서 대답할 수도 없다.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면접관이 다시 서명할 서류를 내민다.

“자, 서명하세요.”

종이를 보니 글자는 어디에도 없고 중앙 하단에 커다란 서명란만 있다. 물끄러미 쳐다보면서도 지난 날들이 머릿 속에 영화처럼 흐른다. 모든 감각은 그 때의 사고와 그 후의 사건의 재생에 몰입되어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있던 면접관이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우물우물 들리기 시작해서 고개를 든다.

“(우물우물우물우물)요!”

“에..?”

“(우물우물우물)고요!”

“네?”

“천.사.시.켜.준.다.고.요!”

“네?”

다시 한 번 말을 하려다 짜증이 폭발한 면접관은 다시 인터컴 버튼을 누르고 반말을 하는 상대 직원에게 수화기 너머 쌍욕을 퍼붓는다. 분명히 ‘천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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